2023

이명호작가 'Heritage #7_회화나무'

유산 시리즈 #7 작품제작협력

덕수궁 ‘흥덕전(興德殿)’, ‘흥복전(興復殿)’ 복원 공사 현장. 본 터는 일제시대 강제 철거되어 ‘동양척식주식회사’의 사택 등이 들어섰다가 해방 직후에는 ‘미대사관’ 등의 터로 쓰였고 직전까지 ‘경기여자고등학교’의 옛 터로 활용되다 문화재청에서 매입하여 현재 덕수궁의 옛 모습으로 복원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. 궁이었던 터가 공터가 되기까지, 그리고 다시 옛 궁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그 과정은 유독 부침이 심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켜켜이 쌓여 있는 단면과 그대로 닮아 있다.


나는 문화재청의 홍보대사로서 ‘Art Fence' 작업을 의뢰받아 현장 답사를 위해 처음 방문하던 날, 경기여자고등학교의 옛 정문으로 들어서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. 큰 회화나무 한 그루가 공터의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던 모습은 실로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. 족히 수령이 수백 년쯤 되어 보이는 회화나무는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 나를 불러 세웠고, 나는 홀린 듯 그에게 다가섰지만, 정작 그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아무 말도 못 하겠다며 돌아섰다.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, 나는 그가 무슨 말이 하려는지 알 수 있었고,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.


고종이 ’아관파천(俄館播遷)‘ 하던 날, 일제가 흥덕전, 흥복전을 부수던 날,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사택이 들어서던 날, 해방이 되던 날, 미대사관이, 경기여고가, 그리고 나라가 다시 흥하여 옛 궁을 복원하기까지 그 회화나무는 그 자리에서 모두 지켜봤단다. 그리고 나를 보며 왈칵 울음을 쏟다가 다시 활짝 웃었다. 기특하기도 한 회화나무는 유독 부침이 심했던 우리 역사를 몸소 표현이라도 하듯, 2008년 고사 판정을 받고 죽었다가 2019년 부활하는 기적을 이뤄냈다. 나는 그 회화나무를, 그 이야기를 작품에 담기로 했다.


여름, 가을, 겨울, 봄. 사계절 동안 작품을 만들고,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사택에서 전시와 출판, 학술행사 등을 기획하고자 한다. <덕수궁 회화나무를 통해 본 근현대사> 정도의 주제가 될 것이다. 내 <사진-행위> 프로젝트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회화나무를 담던 날, 나는 또 한 번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.


‘흥덕’, ‘흥복’을 기원하며 궁을 지었으나 처참히 짓밟혀 사라졌다가 다시 나라가 흥하여 ‘흥덕전’, ‘흥복전’을 도로 짓는다는데, 저 회화나무 뒤로 ‘흥국(興國)’이 서 있더라. 이게 무슨 조화인가? 회화나무는 ‘괴화목(槐花木)’이라 하여, 그 이름 그대로, 예로부터 액을 쫓고 복을 가져다주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, 회화나무 열매로 한지를 노랗게 염색한 것이 ‘괴황지(槐黃紙)’라 하여 소위, ‘부적(符籍)’이 될 정도로 신성한 나무일진대, 어쩌면 이 회화나무 덕에 어제의 갖은 액을 다 물리치고 오늘의 흥국을 이룬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. 여름, 가을, 겨울, 봄. 덕수궁 회화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보려 한다.


- 이명호 작가노트 -

상호: 주식회사 애너그램 | 대표: 강동훈 | 개인정보관리책임자: 강동훈 | 전화: 070-8285-9086 | 

이메일: anagramkorea@gmail.com | 주소: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14길 19, 312호(신당동, 고마운빌딩)

Copyright © 2022 ANAGRAM Inc. 

floating-button-img